부끄러운 고백

부끄러운 고백 [말씀동행 20171221목]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합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담당하는 교육전도사 초년병 시절이었습니다. 교만하게도 당시 저는 제가 무엇이든 잘 해내는 실력있는 전도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부서 선생님들은 저같은 ‘능력의 종’을 전도사로 둔 것을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장 선생님이셨던 성도님이 제게 할 말이 있다며 오셨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제가 이 부서에 부장으로써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전도사님께서는 제가 없어도 혼자서 척척 잘 하시니 저는 부장직을 그만두겠습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당시 저는 주변을 돌아볼 줄 몰랐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해 보이고 싶었고, 일을 효율적으로 잘 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역하는 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역자로 보지 않고, 저의 일을 거들어 주는 ‘도우미’ 정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일은 성공적이었지만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을 잃으니 성공도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공로와 칭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듯 했으나, 저와 함께 한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지만, 꼭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했습니다. 꼭 제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면 다른 분들이 그 자리에 서도록 부탁했습니다. 동역하는 사람들이 의미있고 가치있게 섬기고 사역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또 양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십 수년이나 지난 오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라는 리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함께 교회를 세우는 일, 함께 교회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가 가리워지고 낮아질수록 교회는 더욱 교회다워질 것입니다. 동역자들과 진정한 의미에서 동역할 수 있을 때에 주님의 몸은 더욱 건실해질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진정한 리더쉽이란 나를 가리고 감추어 주변을 빛나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강해집니다. 이 고집쟁이, 교만쟁이를 들어 주님과 함께 그 생명의 길, 좁은 길로 끝까지 행하게 하소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