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무엇이냐?

소원이 무엇이냐? [말씀동행 20180203토]

제 차에 ‘옛날 이야기’ CD가 있습니다. ‘은혜 갚은 호랑이’ ‘선녀와 나무꾼’ 같은 전래 동화들을 포함한 옛 이야기들 시리즈입니다. 저도 아이들과 함께 듣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얼마 전 시완이와 함께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난한 한 할아버지가 사냥을 갔다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신비한 사슴을 잡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애원하는 사슴이 불쌍해서 그냥 놓아줍니다. 그러나 욕심 많은 할머니는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버럭 화를 내며 사슴을 찾아가 목숨을 살려준 댓가로 소원을 들어달라고 말하게 합니다. 사슴은 대궐 같은 기와집에 가구와 비단과 맛난 음식들까지 차례로 주며 소원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욕심 많은 할머니의 끝도 없는 소원 때문에 결국에는 다시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시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우리도 여기 숲 속에 들어가서 사슴한테 소원 들어 달라고 하자” “사슴 찾으면, 시완이는 어떤 소원 들어달라고 하고 싶은데?” “응~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인형이랑 우리 가족 매일 매일 천국 만드는 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하나님 나라)을 고대하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기다리는 방식과 태도에 따라 우리가 기다리는 천국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치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사슴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례받고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삶이 천국처럼 느껴지지 않을때 혼란스러워합니다. 간곡한 기도로 부탁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고 계시거나, 예수님께서는 동화에 나오는 신비한 사슴만큼도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옛 이야기에 나오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이나 비단옷, 맛난 음식들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 천국은 우리의 반응과 상관없이 강제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천국처럼 변하려면 꼭 필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의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신 은혜와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순종으로 반응하는 삶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짝입니다. 믿음은 있는데 순종이 없거나, 순종은 하는데 믿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순종의 분량이 곧 믿음의 분량입니다. 천국은 은혜로 주어지지만 믿음으로 보고 순종으로 캐내야 누릴 수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라! 용납하라!’ 하시면 이유를 불문하고 순종으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겁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라!’ 하시면 믿음으로 불평과 원망을 그치는 겁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 완전하신 손을 움직여 일하시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주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호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이 밭을 사느니라.” 마1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