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섭고 떨릴 때

마음이 무섭고 떨릴 때 [말씀동행 20171026목]

학교에서 돌아오는 스쿨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할 말이 있다며 시완이가 제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아빠, 나 사실은… 학교 갈 때 장난감 가지고 가지 않기로 엄마랑 약속했는데 학교에 장난감 가져 오는 친구들을 보니까 나도 너무 가지고 가고 싶고 그래서… 그런데 물어보면 안된다고 할 것 같아서 오늘 아침에 몰래 가방에 숨겨가지고 갔었어. 그런데 오늘 몰래 가지고 와서(거짓말 해서) 계속 마음이 무섭고 떨렸어.”

걱정말라며 다독이고는 그 자리에서 엄마랑 통화하게 해 주었습니다. 비록 약속을 어겼지만 솔직하게 얘기한 덕에 용서 받았습니다. 또 한 주에 두 번은 제한적으로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도 받았습니다. 시완이의 표정이 금새 날아갈 듯 환해졌습니다.

사람이 진정한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해질 때가 있습니다. 죄로 인한 두려움의 짐을 회개와 용서를 통해 내려놓게 되었을 때입니다. 또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받고 용납 받았을 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먼저는 이 두 가지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살면 좋겠습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그 복된 길을 전하기 위해 좋은 샘플이 되고 통로가 되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목사로써 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써 성도들과 이웃들을 위해 받은 가장 중요한 사명도 바로 이 일들임을 깨닫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요한일서 1:9


무겁지만 재밌어요

무겁지만 재밌어요 [말씀동행 20171025수]

주일 아침, 교회에 일찍 와 있던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아빠가 건너편 건물에 가서 커피 포트를 가져와야 하니까 둘이 잠깐 놀고 있어~”

커피 포트를 가지고 왔더니 시완이가 교육관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 손에서 커피 포트를 가져가며 말했습니다.
“아빠 무거우니까 내가 들어줄께~”
“응~ 고맙긴한데~ 이거 시완이한테는 무거울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응~ 조금 무겁지만 재미있어~” 하고는 교육관 친교실까지 가져다 주었습니다.

시완이의 ‘재미있다’는 표현이 다른 의미로 와 닿았습니다. 마치 ‘아빠를 도울 수 있어서 행복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살면서 가장 재미난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입니다.

아내와의 연애시절, 당시 고속도로 운전을 한번도 해 보지 못했던 제가 그녀에게 특별한 생일 선물을 전달하고 싶어 처음으로 고속도로 운전을 시도했습니다. 마침 비가 오는 밤 길 운전이었습니다. 결국 길을 잘못 들어서 1시간 정도의 거리를 무려 6시간을 방황하다 아침이 되어서야 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생길이 오히려 저희 둘에게 더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희생이 크고 힘들었던 만큼 간절하고 소중한 사랑의 표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목사가정 혹은 선교사가정을 짠한 눈빛으로 보시는 분들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하는 나의 일들이 신나고 재미있어 보여야 할텐데, 혹 내 모습이 고생스럽게만 보이나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누군가 제게 “목사로 사는 것이 불편하고 그 짐이 무겁지 않나요?” 하면 물으면 시완이처럼 대답하고 싶습니다. “좀 무겁지만 재밌어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히브리서 12:2


거룩한 식욕

거룩한 식욕 [말씀동행 20171024화]

주일에 한 성도님을 통해 영접기도 인도 부탁을 받았습니다. 신앙은 있으나 집안 사정으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오지 못한 이웃 여성 분이 계신데 그 분의 시아버님이 곧 임종을 앞두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며느님의 마음에 시아버님이 꼭 영접기도 하셨으면 좋겠는데 오셔서 좀 도와주실 수 있느냐는 말씀이셨습니다.

월요일 오후 휴대용 성찬기를 준비하여 요양원으로 갔습니다. 그 시아버님은 폐암으로 인해 몰핀 주사에 의지하여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계신 상황이었습니다. 약 기운에 취하셔서 의식이 왔다갔다 하기를 반복하셨습니다. 건강하실 때 교회에 몇번 나가본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영접기도를 하신 적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주위에서 영접기도를 하시겠냐고 물으셨을 땐 극구 거절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분을 보자 병상에서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는 듯 하여 귀에 가까이 대고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저는 조선형 목사라고 합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 해 드리려고 해요. 저희 아버지는 60세에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가 예수님 믿고 천국가셨으면 하고 열심히 기도했는데요, 극구 부인하시다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영접기도 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다행히고 감사했는지 몰라요. 지금 자녀들 마음이 그때 꼭 제 마음 같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는 간단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 지금 말씀드린 것을 믿으신다면 말하기 힘드시니 고개를 끄덕여 주세요.” 시간이 멈춘듯 모두들 아버님의 고개에 집중했습니다. 힘겨운 끄덕임을 보고 영접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후에 성찬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증거로 피를 주셨고, 우리 속에 거하시겠다는 증거로 몸을 주셨어요. 이것을 받아 먹으시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에요..” 의식이 거의 없으신 중이었는데도 작은 빵조각과 포도쥬스를 ‘쩝쩝’ 소리를 내시면서 맛있게 드셨습니다. 거룩한 식욕이었습니다.

그 ‘쩝쩝’ 소리가 얼마나 반갑고 듣기 좋았는지 모릅니다. 평생을 주님 없이 사시면서 느꼈던 모든 영혼의 목마름과 허기가 그 소리에 묻어나는 듯 했습니다. 조마조마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가족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사실은 월요일이 제 day-off 에요. 쉬는 날인데 여길 와 달라고 하셔서 살짝 스케쥴을 고민했는데요,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제 영원히 내 품에서 쉬어야 할 영혼을 위해 네 쉼의 작은 조각이 사용된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그래서 ‘영광입니다 주님..’ 하고 왔어요. 아드님도 천국에서 아버님 뵈시려면 신앙생활 시작하셔야지요?’

이렇게나 감격스럽고 조마조마하고 힘겨운 은혜의 일들을 마치 일상으로 알고 주님 안에서 누리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복에 겨운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월요일에 불려 나가도, 원하는 것을 좀 못하고 살아도 진짜 복된 삶은 주님 안에 이끌려 다니는 때입니다. 끌려다니는 듯 하나 실은 복된 자리로 불려 다니는 것입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보무도 당당하게

보무도 당당하게 [말씀동행 20171019목]

오늘 시완이 학교에서 전교생 걷기&달리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학교 옆 공원 산책로를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나와 달렸습니다. 시완이가 속한 Kindergarten 클래스는 점심시간 즈음에 달리기로 스케쥴이 잡혔습니다.

아내와 응원을 갔습니다. 저 멀리서 걸어오던 시완이가 저와 아내를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며 손을 흔들더니 금새 걸음걸이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옆을 지나가면서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야~” 친구들 앞에서 엄마 아빠를 반기고 기뻐해 주어 고마웠습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엄마 아빠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발걸음이 힘차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저의 발걸음을 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저의 발걸음에서 무엇을 읽어내고 있을까? 주님과 동행하자고 설교하고 있는 목사의 걸음걸이를 보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과 동역자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를 생각합니다. 보무도 당당하게 주님과 함께 걷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 24:15-16


그냥 쓰세요

그냥 쓰세요 [말씀동행 20171018수]

저희 교회는 빌딩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교회 사무실 뿐입니다. 자연스레 사무실 책상을 모든 부서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의 설교준비 책상도 되었다가, 재정팀, 새가족팀, 찬양팀, 찬양대, 아기학교, 교회학교, 유스, 청년부, 샘터… 책상도 됩니다. 때로는 아이들 영화 보는 장소도 됩니다.

여러 부서가 책상을 공동으로 사용하다보니 여느 교회들과 같이 볼펜, 형광펜, 풀, 가위 같은 작은 물품들이 많이 분실되고 부족합니다. 때론 그 많은 볼펜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매주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재정팀에서 가장 아쉬웠을 것입니다. 그래선지 볼펜을 잔뜩 사다놓고는 메모지를 붙여 놨습니다. “재정팀 pen 이지만 그냥 쓰세요^^”

어디든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는 다양한 이슈들이 발생합니다. 사람들이 많을수록 불편한 일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 바로잡고 싶은 마음들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원칙이 없이 마냥 좋은게 좋다고 방치하면 공동체 전체의 마음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뿌리뽑겠다고 마음을 날카롭게 세우면 문제를 아주 없이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또한 공동체의 기초를 흔드는 일이 됩니다.

원칙을 이야기하되 미소를 잃지 않고 용납하고 기다려 주는 여유가 있을 때 공동체는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전체의 변화속도와 타이밍 그리고 책임분량은 하나님이 계산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방향성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향한 긍휼과 자비 그리고 친절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 메모에 담긴 생각과 태도가 온 교회 구석구석에 전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에베소서 4:2


좋아하는 것으론 안됩니다

좋아하는 것으론 안됩니다 [말씀동행 20171017화]

갑자기 “좋아해” 와 “사랑해”의 의미 차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습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들 몇개를 소개합니다.

“좋아하는 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해졌으며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좋아하면 욕심이 생기고, 사랑하면 그 욕심을 포기하게 된다.”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장점들때문에’,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단점들까지도’

“좋아하는 것은 감정의 흔들림이지만,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떨림이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있으면 좋아’와 ‘없으면 안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좋아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맡겨주신 사람들을 좋아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각 문장의 주어자리에 놓고 읽어보니 제가 하나님과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금새 분명해집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의 모습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시점도 바로 여기인 것 같습니다. 사랑해야 할 하나님을 점점 좋아할 대상으로 여기니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지복, 형통)에 관심이 더 많아집니다. 사랑하라 명하신 사람들을 점점 좋아할 대상으로 여기려고 하니 그들을 품고 용납하고 기다려주는 일보다는 선을 긋고, 정죄하고 담을 쌓는 일에 발이 빨라집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좋아 광팬으로써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 한들, 또 아무리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흥미를 가지고 교회라 불리는 거대공동체를 결성한다고 해도 그것의 출발과 목적지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13장) 아무리 하나님을 좋아해도 그것은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맡겨 주신 사람들을 많이 좋아해도 그것 또한 불순종입니다. 그들을 또한 사랑하라고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새 계명이자(요13:34)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마22:37-39)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분명히 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동안 많은 일을 하고 대단한 것을 하며 살고 있는 듯 하나, 실제로 믿는 자로써는 본질을 놓치고 헛다리를 짚는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교회, 배우자, 자녀, 부모 그리고 이웃을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또 정말 사랑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돌아봐야겠습니다.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4-35


비가 와도 좋습니다

비가 와도 좋습니다 [말씀동행 10/16/2017화]

지난 주부터 교회에서 가을학기 아기학교가 시작됐습니다. 토요일 아침, 아기학교 발런티어 교사로 헌신한 젊은 성도님들이 교회로 모였습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임에도 불구하고 8주 동안 황금같은 토요일 시간을 포기하고 헌신한 분들입니다.

아기학교 첫날부터 비가 많이 왔습니다. 등록하신 가정들 중에는 꽤 먼곳에서 운전하고 오시는 분들도 많았기 때문에 여러 불편한 일들이 예상되어 우려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우산을 들고 길가로 배웅을 나가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빗속에서 부모님들이 아이와 가방을 잘 챙길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함이었는데, 보기에 좋았습니다.

첫날이라 새로운 얼굴들이 많아 프로그램 진행이 더디고 어색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빗 속에 선생님들이 배웅을 나간 덕에 부모님들의 마음이 더 쉽게 열릴 수 있는 기회, 섬기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에 예상치 못한 비가 오면 마음의 우산을 접어 버립니다. 이젠 다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운도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더디고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가 오는 것을 다소 불편하고 우울하게 느낄 수 있으나, 우산을 펴고 나가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됩니다.

인생에 고난과 문제의 비가 내릴 때 옆에서 같이 비를 맞아준 사람, 우산을 들고 나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 준 사람이 되는 것은 오히려 은혜이고 기회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좋은 기억이란 관계가 돈독해지는 경험입니다. 그러니 그런 때는 날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날이 궂고 비가 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위 누군가의 삶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가랑비가 내리는가 하면 천둥 번개가 치며 세찬 소나기가 내리기도 합니다. 사랑을 표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보일 기회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우산을 준비하면 화창한 날에 쌓은 좋은 기억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니 비가 와도 좋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보물들이 지천입니다

보물들이 지천입니다 [말씀동행 20171012목]

요즘 감사하고 자족하는 삶에 대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것들을 생명처럼 붙들고 살아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삶, 가정, 목회 환경에서도 이따금식 스며 나오는 불만족과 고통들은 대부분 감사와 자족의 결핍 내지 부재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어떤 특정 조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감사제목 내지 감사꺼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삶의 특정 내용만을 앞에 내세워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삶의 어느 부분에만 해당하는 특별감사가 아니라, 삶의 어느 한 영역도 제외시키지 않고 지금 처해 있는 나의 모든 현실이 선하신 하나님 손에 맡겨져 있다는 믿음으로 인한 감사입니다.

자족은 모든 일을 대강 좋게 좋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들 안에 이미 충분한 행복과 기쁨의 모든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음을 믿음으로 취하는 일입니다.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감사할 때 자족할 수 있게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자족할 수 있을 때에 감사도 깊어집니다.

오늘 저에게 허락하신 가정과 목회라는 현실 속에서 이미 감사한 일들도 많지만 어느 한 영역도 제외하지 않고 모든 영역에 대하여 믿음으로 감사를 시작하고 자족하는 삶을 연습하고 확장할 때 주님이 미리 숨겨 두신 보화들이 점점 더 풍성하게 발견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사랑하는 가족들을 대할 때에 수많은 마음의 선택들을 통해 종일 보물캐기에 나선 것과 같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작고 큰 이슈들, 사람들과 상황들을 대할 때에도 겉으로는 어찌 보이든 그것들 안에는 믿음으로 캐내야 할 하늘의 보화들이 가득함을 믿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하늘의 보화는 하늘에서 떨어질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땅 속에 숨겨 두신 것을 날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구고 캐내어 취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매일 캐고 또 캐도 자꾸 나오니 매일이 새롭습니다. 또 어제는 못 캐낸 보화를 내일은 캐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매일이 새롭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미 하나님 나라 우리 중에 와 있다고 하셨습니다.(눅17:20-21) 하늘 보화들이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속에 지천입니다. 교회와 목회의 각 부분들 속에도 지천입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캐내어 취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방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방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동행 20171004수]

제자훈련 시간에 성도님들께 신앙생활에 대한 질문만들어 오기 숙제를 내 드렸습니다. 한 성도님이 이런 질문을 가져왔습니다. “인생을 사는 목적을 알고 싶어요. 무엇을 하는 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인지 알고 싶은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치 인생의 방향을 잃은 것처럼 고민이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별합니다. 그러나 특별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숨겨두셨거나 모호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부르심은 인생의 어느 특별한 시기에 발견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일찍부터 우리 모든 사람들을 향한 변치않는 동일한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일’입니다.(마22:37-40)

목사나 선교사가 되거나, 사업가가 되거나, 예술인 혹은 정치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하여 사는 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그 이전에 더 근원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일입니다. 그 무엇이 되거나, 그 어떤 일을 이루지 않았어도 우리는 각자 부르신 삶의 자리에서 부어주신 자원, 은사, 시간, 건강을 가지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진로와 직장은 변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이루는 일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설사 직장을 쉬고 있더라도 여가의 시간을 가지고 여전히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고 있다면, 그것 또한 이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에 대한 본질적인 응답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는 문제는 그 부르심을 각각의 상황에 따라 적용(Application)하는 문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Application 은 평생에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으며 중간에 변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과 직업을 선택하는 일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라는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한 여러 Application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처음부터 변치 않았던 삶의 목적, 그 거룩한 부르심 앞에 여전히 서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 일을 내 삶의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또 다른 부르심을 알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길을 잃지도 않았으니 방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3:37-40


그건 당연한거고

그건 당연한거고 [말씀동행 20171002월]

공교롭게도 10월의 첫 주일에 생일을 맞았습니다. 시차 때문인지 토요일 밤부터 축하 메세지들을받았습니다. 예배 준비를 하며 교회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들 챙겨주시지?”

주일 아침 아이들로부터 생일 카드를 받았습니다. 유완이의 카드를 보니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유완이 말처럼 정말 잘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일 듣기 좋은 소리였습니다. 유완이는 제게 와서 물었습니다.

“아빠! 생일선물로는 뭐 갖고 싶은데? 나 용돈 있는 걸로 다 사줄께~”
“응, 아빠가 유완이한테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10번 excuse 해 주는 거~”
“에이~ 그건 당연한거고~ 뭐를 갖고 싶은지를 말해보라고~”

아빠지만 당연하다는 말에 고마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가르쳤다면, 이젠 아빠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도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로를 매일같이 불쌍히 여기고 용납해 주는 일을 없으면 사람은 하루도 평안히 숨 쉬고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